엊그제 처음으로 유기견 봉사활동을 다녀왔다. 유기동물을 돕는 앱을 만드려고 하는데 실제로 봉사를 나가거나 보호소를 운영하는 분들을 대상으로 여쭤보고싶은 내용들이 있었다.
늘 생각만 하다가 얼마전에 문득 행동으로 옮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관련 오픈채팅방 여러곳에 들어갔다. 어느 한 곳은 동아리로 운영이 되고 있었고 가입비가 있었다. 고민이 됐는데 그냥 들어갔다. 지금은 들어가길 잘했다는 생각이다.
봉사에 참여할 의향이 있어도 개인적으로 움직이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운영진분들이 주기적으로 참여모집글을 올려주시고 일부 회원님들이 차량 픽업을 해주신다. 많은 보호소들이 서울권 밖, 대중교통만으론 이동이 어려운 곳에 있다보니 자차가 없는 사람들은 선뜻 참여하기가 쉽지 않은데 좋은 기회였다. 봉사할 겸 탁상공론 하기보단 현장에서 어떤 이슈가 있을 수 있는지 직접 보고싶었다.
차를 타고도 한 시간은 달렸다. 아무 댓가 없이 운전해주신 정훈님께 너무 감사했다. 외진 곳이었다. "차 없으면 절대 못오겠네"라는 생각이 역시나 들었다.
보호소에 처음 와봤고 제일 먼저 한 일은 사료를 실내로 옮기는 거였다. 원래 밖에서 보관하고 계셨는데 비가 오면 다 젖는다는 것이 이유였다. 힘들진 않았다. 오히려 먼 길 온만큼 힘 쓸 수 있는 일은 최대한 하고 가고 싶었다. 다른 분들은 강아지들 배변 청소, 물청소 등의 작업을 해주셨다.
이곳은 사료, 생수, 더 나아가 간식도 웬만큼 비축이 돼있는 것 같았다. 회원님들이 봉사를 다니는 곳들은 웬만큼 밥 굶을 일은 없다고 하셨다. 그런데 쌓아두면 그만큼 쥐들이 파먹는 게 문제라고 하셨다. 직접 보니 쥐들이 사료를 파먹어서 곳곳에 구멍이 뚫려있었다.
그다음으로는 천막 설치 작업을 했다. 비가 오면 바닥에 물이 고이고 강아지들 밥그릇에 물이 찬다고 한다. 처음 뵙는 분들이었는데 다들 너무 친절하셨고 틈틈이 사진도 찍어주셨다. 햇빛은 세지 않았지만 습도가 높아서 땀이 많이 났다. 사진을 찍으면서 인지부조화가 일어났다. 여기 강아지 친구들은 열악한 환경인데 이걸 배경으로 웃으면서 사진을 찍는 게 못할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여기있는 강아지들이 행복한지 불행한지는 사실 사람이 온전히 알 수 없는 영역이다. "여기있는 강아지들은 여기서 관리받으면서 적어도 밥을 굶진 않으니까 괜찮다고 보면 되나? 어떤 친구들은 오히려 갇혀있는 것보다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게 더 낫다고 느끼지 않을까? 불쌍하고 안 됐다고 보호소로 거두어들인 건 인간의 시선과 판단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고 나는 답을 찾지 못했다. 얼마전에 sns에서 보호소의 몇몇 강아지들이 육안으로 괜찮아보였는데 스트레스가 컸나본지 자연사했다는 글을 봤다. 그래서인지 더 이런 생각이 드는 것 같다. 그래도 밥 안 굶고 매맞진 않으니 다행이라는 결론으로 생각을 흘려보냈다.
나는 어쩌다 한 번 봉사지만 매일을 희생하시는 소장님을 보고 경외심이 들었다. 나도 늘 돕고싶다는 생각을 하지만 이것이 하루에 여러번씩 내 일과가 된다면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만세와 우리, 사람의 손길을 너무 무서워했다. 쓰다듬어주고싶었는데 실패했고 억지로 시도하는 건 오히려 스트레스를 주는 나만의 욕심이라는 생각에 그만뒀다. 어떤 사연이 있는지 알 것만 같아서 안쓰러웠다. 단순히 겁이 많았던 거였으면 좋겠다.
다른 강아지들은 다른 분들이 챙겨주셨고 나는 제일 먼저 우리와 만세한테 갔다. 간식을 나눠주려고하니 포장지를 뜯지도 않았는데 간식을 알아봤다. 손길을 피하던 녀석들이 두발로 일어서서 다가왔다. 간식 하나에 이렇게 다른 반응이라니, 정말 단순하고 착한 녀석들인데 좀 더 많은 사랑받으며 좋은 환경에서 지내면 좋았을 텐데.
산책도 시켜주고싶었는데 이것 역시도 겁이 너무 많아 그만뒀다.
꽤 인적 드문 곳에 있길래 택배가 안 올 줄 알았는데 이런 곳에도 택배가 왔다. 서비스 기획에 큰 변화를 줄 뻔 했다. 직접 봉사 다니는 분들이 여건될 때 겸사겸사 도와주시는 게 아니라면 물품 기부는 대부분 택배 형태로 이루어질 거란 생각이 들었다. 역시 현장에 직접 나와보는 것만큼 정확한 게 없다.
봉사가 끝나고 회원님들과 점심을 함께 먹었다. 20~30대 분들이 많았다. 나한테 먼저 적극적으로 말도 많이 걸어주셨다. 얼마전에 내가 개발자임을 밝히고 단톡방에서 여러 질문들을 남겼었는데 먼저 알아봐주시고 인사해주셨다. 신기했다.
대부분 아이폰을 쓰시는 걸 보고 플러터는 주제를 포기할 게 아니라면 선택이 아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의외였던 건 강아지들을 안 키우는 분들이 많으신데 단지 강아지가 좋다는 이유로 참여하시는 분들이 많았다는 것이었다.
최근에 준 번아웃이 와서 쉬는 기간을 가졌다. 하루종일 아무것도 안 한 건 아니고 기획, 디자인 작업을 해나갔다. 혼자 하는 만큼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나는 반드시 해낼 것이다. 최근에 취업이 마치 내 개발 인생의 전부이자 종점이 돼버린 것 같아 기분이 별로 좋지 못했다. 그런데 이 프로젝트를 함으로써 내가 한 명의 개발자로서, 또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에 대한 답을 찾아나갈 수 있어졌다. 그동안 열심히 살았지만 그 노력들이 한 분야에 집중되지 않아 아쉬웠는데 이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릴리즈해내면 의미가 있어진다. 기획, 디자인, 개발, 마케팅 등 그동안 내가 경험해온 것들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 혼자서 해나갈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이번주를 마무리하면서 혼자 영화를 봤다. 주말이라 그런지 사람이 많아서 월요일에 볼까 생각했는데 그냥 마지막 상영 때 갔다왔다.
영화가 끝나고 보는 어둑해진 하늘은 언제나 기분을 묘하게 만든다. 중학교 1학년 때 이곳에 처음으로 부모님 손을 떼고 친구들이랑만 영화를 보러왔었다. 그때는 이런 것 하나도 도전이었고 새로웠는데.
영화는 재밌었다. 처음에 업이 나오길래 내가 예매를 잘못했나싶었다. 연출이 귀여웠고 신선했고 재밌었다. 뭐랄까 왠지 모르게 20살이 생각났다. 감정이 무뎌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도 프로덕트 공급자의 입장에서 이런 결과물들을 보면 자극을 받는다. 우리는 기술로써 사람들의 삶을 더 윤택하게 만드는 것에 보탬을 주고 이런 애니메이션 제작하시는 분들은 사람들에게 꿈과 용기, 감동을 준다. 나도 그런 사람이, 주체적으로 내 삶을 설계해나가는 사람이 되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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